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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Story

- 에디터 S가 들려주는 S 이야기 -

누드 미술의 역사와 여성 누드 작품이 많은 이유는?

관리자
2024-07-13
조회수 170

안녕하세요. 건강과 성 박물관 에디터 S입니다.


저희 건강과 성 박물관 2층에는 '에로티시즘' 작품을 모아 놓은 갤러리가 있습니다. 개관 이후, 지금까지 총 9회에 걸쳐서 대한민국 에로티시즘 미술 대전을 통해서 수집한 작품과 국내 유명한 작가의 에로티시즘 작품을 구매해서 2층 갤러리에 전시해 놓고 있습니다. 지금은 10회 에로티시즘 미술대전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라 저희 갤러리 뿐만 아니라 다른 에로티시즘 미술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다 보니 의문이 생겼습니다.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을 유심히 살펴보면, 여성 누드 작품이 남성 누드에 비해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희 갤러리 뿐만 아니라 다른 미술 갤러리나 미술 작품을 살펴봐도 사람의 누드나 에로티시즘 작품은 대부분 여성의 누드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림의 영역이 아닌 사진의 영역에서도 남성의 몸보다는 여성의 몸을 작품으로 담고 있는 것이 보편적인데, 에디터 S는 이에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포스팅에서는 왜 미술 작품 중에는 여성의 누드가 많은 이유와 누드 미술의 역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당신은 신입니까? 누드 미술 작품의 시초는 남성의 몸"


건강과 성 박물관의 에디터 S가 왜 여성의 누드가 더 많은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자료 조사를 시작하면서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알아냈습니다. 요즘은 누드 하면 여성의 몸이라는 인식이 갖게 될 정도로 여성의 몸을 누드로 표현한 작품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미술사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고대 미술을 살펴보면 지금과는 다르게 누드를 표현한 작품의 대부분은 남성의 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고대 그리스, 사람의 몸을 미술로 표현하는 누드 작품이 시작된 시기입니다. 남성의 누드가 미술 작품의 소재로 활용이 된 이유는 스포츠의 영향이 매우 컸습니다. 남성들의 운동경기는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고 고대 올림픽의 형태로 스포츠를 활성화 했습니다.

고대 올림픽에는 남자들만이 참전이 가능했고, 여성의 경우는 참전은커녕 관람도 제한되었습니다. 올림픽에 참전한 선수들은 벌거벗은 몸으로 경기에 임했고 운동으로 다져진 그들의 몸은 경배와 추앙이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오죽하면 완벽한 근육질의 몸을 가진 사람에게 "당신은 신입니까?" 하는 인사로 소위 몸짱을 추앙하는 시기였습니다.


"남성 위주의 사회. / 남성의 누드는 당당했고, 여성의 누드는 부끄러웠다."


또한 고대 그리스는 인간 중심의 사회이자 철저하게 남성 중심의 사회였기에 여성을 완전하지 못한 인간으로 취급했는데, 시쳇말로 여성은 남성이 되다가 만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시민의 자격도 남성에게만 주어졌고 교육이나 여성들을 활동에 큰 제약이 있었습니다.남성 중심의 사회 그리고 스포츠를 중요시하고 운동으로 다져진 다부진 몸은 신의 그것과 같아 추앙하던 고대 그리스의 미술 작품은 자연스럽게 남성의 몸을 누드로 표현하는 미술작품이 많아졌고 남성의 누드는 당당하고 힘이 가득한 에너지 넘치는 모습으로 표현했습니다.

여성은 수줍게 표현했고 남성은 당당하게 표현

물론 고대 그리스에도 여성의 누드를 표현한 작품도 있었으나 여성의 누드는 남성의 누드만큼 당당하고 숨김없는 표현을 하지 못했습니다. 여성의 누드는 수줍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옷이나 천으로 주요 부위를 가리거나 여신의 모습을 본떠서 그리는 등, 우월한 표현을 한 남성의 누드와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 결과 고대 그리스의 누드 미술 작품은 '남성 우월주의'와 '근육질의 남성의 몸은 곧 신의 몸이다.'라는 생각에 여성보다 남성의 누드 미술 작품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상은 고대 그리스가 절정에 달하는 헬레니즘 시대에 조금 변화가 생겨 여성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작품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여전히 남성 주의의 사회였기에 여성의 누드 미술 작품은 남성의 욕망을 채우는 객체로 활용되었다는 점에서 그전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금욕의 시대, 증발 된 누드 미술"


신의 몸을 닮은 남성의 누드 미술이 인기가 있었던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된 누드 미술은 중세 시대에 접어들면서 주춤하게 됩니다. 중세 시대는 신앙의 시대, 기독교의 시대라 평가되는데 이 시기에 누드 미술은 죄악과도 같았습니다. 사람의 벗은 몸을 타인이 보게 하는 것 자체가 죄악이었던 시대였던 만큼 일반인의 모습으로 누드로 표현하는 것은 금기시되었습니다.

중세 미술은 종교의 나팔수와 같이 종교적인 작품이 주를 이루었다.


또한 중세 시대의 미술은 종교의 시녀라 불릴 만큼 그 당시 미술 작품은 대부분 종교적인 색채를 띈 작품이었고 일반적인 사람이나 사람의 몸을 다루는 작품은 사라졌다고 보는 것이 보편적이다. 종교를 소재로 한 작품 중에 아담과 이브의 누드가 그려지는 것이 중세 시대 누드 미술의 대부분이라 할 수 있고, 일상생활을 다룬 삽화에 간간이 여성의 누드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중세 시대 미술은 예술적 가치보다는 글을 모르는 일반 대중에게 종교를 전파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여신은 예술 VS 여인은 외설"


중세 시대 신과 종교를 위한 미술 작품이 예술적인 인정과 가치를 받았다면, 르네상스에 접어들면서 인간 중심의 사상이 생기면서 예술 분야는 종교를 벗어난 다양한 소재를 선택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중에서 인간의 몸이라는 소재는 최초의 누드화라고 불리는 '비너스의 탄생'이라는 작품을 탄생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 시대라도 누드화는 외설 논란을 피해 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작가들은 나름 꼼수를 사용했는데요. 비너스의 탄생을 그린 작가 산드로 보티첼리는 본인이 흠모하던 시모네타 베스푸치의 누드화를 그렸음에도 그림의 제목을 비너스의 탄생으로 정해, 인간 베스푸치가 아닌 그리스 로마 신화의 여신의 누드로 남겨지게 됐습니다.

왼쪽-잠자는 비너스  / 오른쪽 - 우르비노의 비너스


이후에도 '잠자는 비너스', '우르비노의 비너스' 등 실존하는 여성의 몸을 그린 뒤에 비너스라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여신을 작품명에 넣어서 사람이 아닌 여신의 몸을 그렸다는 것으로 외설 논란을 피해 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르네상스 시절에 누드 작품에는 유독 비너스가 많이 등장했다. 물론 모델은 일반적인 사람, 즉 여성이였다.

여신이 아닌 여성의 누드를 그린 작품 - 옷을 벗은 마하

여전히 신화 속 존재 만을 누드화의 주인공을 등장 시키던 중에  화가 고야는 '옷을 벗은 마하'라는 작품을 그렸는데요. 작품 속 주인공은 여신이 아니라 실제 존재하는 매력적인 여인이었고, 이 작품은 최초로 금지를 깬 누드화라 평가 받고 있습니다. 게다가 작품 속 여성은 자신의 몸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관객을 바라보는 듯 당당한 시선은 금기와 종교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 들여졌고, 결국 고야는 종교 재판에 회부되기도 했습니다.

여성 중에서 매춘부로 추정되는 여성의 누드를 담은 '올랭피아'


에루아르 마네라는 작가는 '올랭피아'라는 작품을 선보였는데, 작품 속 주인공은 여신도 아니었고 일반인도 아닌 매춘부를 모델로 그려 넣었습니다. 작품 제목인 올랭피아라는 단어 자체가 그 당시 매춘부들의 가명으로 매우 흔한 이름이었기에 그 작품을 그린 마네는 사람들에게 욕설과 폭력에 시달려야 했기에 경호원을 고용해 대기 시켰다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여성이 옷을 벗는다는 것은 매춘부나 했던 것이라 생각했고, 사람의 누드는 매춘부의 누드가 되어 비난을 피해 갈 수 없었기에 검열을 피하고 예술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신화 속의 인물을 그림에 등장시켜야 했습니다. 그런데 작품명부터 그림의 묘사까지 매춘부의 모습을 그려 냈으니 논란도 이런 논란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 당시의 누드화는 여신을 그렸으면 예술이 되었고 여성을 그렸으면 외설이 되었습니다.


"그럼 왜? 여성 누드화가 더 많을까?/ 포르노그래피의 시작?!"


간략하게 고대 그리스부터 르네상스 시대까지 누드 미술에 대해서 간략하게 정리해 봤는데, 그럼 왜 여성의 누드가 더 많은가에 대한 궁금증에 대한 해결은 되지 않았습니다. 여성의 누드화가 더 많은 이유는 김빠지게도 매우 심플한 이유 때문에 그렇게 됐습니다.


16세기에서 19세기, 서양 미술의 전성기라 불릴 수 있는 기간 동안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남성, 그림을 구입하는 사람도 남성, 감상하는 사람들까지 모두 남성이었습니다. 예술가들은 그림을 그린 뒤 비싼 가격에 팔아야 돈과 유명세를 얻을 수 있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소위 잘 팔리는 그림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첨부한 이미지입니다.


모든 권력과 부를 남성이 쥐고 있던 시절, 예술품을 수집하는 고객들 역시 남성이었고 그들은 당연하게도 남성의 누드보다는 여성의 누드를 선호했습니다. 남성의 시선으로 그려진 여성, 다시 말해 예술적인 가치보다는 에로티시즘, 포르노 그라파의 역할로 누드화가 그려져 나갔고, 그 당시 유명한 화가를 제외한다면 화가들은 예술적인 가치보다는 얼마나 실물과 비슷하게 누드를 그렸는지에 집중했습니다. 지금의 사진과 같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누드는 예술적 가치보다는 에로티시즘, 포르노그라피의 성격이 짙었고 여성에 대한 편견을 담기도 했다. 누드가 금지됐던 중세 시대에도 아담과 이브의 누드는 종교적인 이유로 그려졌는데 예술적 가치보다는 에로티시즘에 집중했고, 그림에서의 묘사에서도 육체적인 쾌락에 눈을 뜬 이브는 선악과를 먹고 뱀과 불륜을 저지르는 악의 모습을 취했고, 아담은 순진한 모습의 선으로 그려졌습니다. 이런 식의 여성을 묘사한 작품은 그 뒤로도 이어졌고, 결국 누드라는 것은 여성의 몸을 그린 그림이며 남성이 보고 여성은 전시되는 형식이 되어 버렸습니다.

안타깝게도 여성의 누드화가 많은 이유는 권력과 힘을 가진 남성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여성이 아닌 여신의 모습을 그린 이유도 종교적인 색을 떠나서 여신의 몸은 늘 황금비율이라고 할 수 있는 완벽한 신체이기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속내는 남성들의 시선이 강하게 작용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 짧은 글로 누드의 역사를 전부 파악하기 힘들지만, 과거 우월하다고 생각되는 남성의 몸을 미술 작품의 소재로 활용했던 시절부터 여성의 누드화가 유행했던 시절까지의 모습을 살펴보면 남녀의 차별과 인식에 의한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원시 시대의 동굴 벽화"


요즘 건강과 성 박물관 에디터 S는 '만화로 보는 성의 역사'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제목대로 성의 역사를 원시시대부터 현재까지 만화로 그린 작품인데 블로그 소재를 찾을 겸, 성에 대한 지식을 늘릴 겸 읽고 있습니다.

이 책에 초반 챕터를 살펴보면, 원시 인류라 할 수 있는 크로마뇽인은 동굴에 여성의 몸과 여성의 성기를 그리곤 했다고 합니다. 그들이 여성의 몸과 성기를 동굴에 그린 이유는 아이를 낳는 여성에 몸에 대한 공경과 경외심이 있었기에 다산을 기원하면서 여성의 몸을 그렸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원시인이라고 불리던 크로마뇽인이 그린 여성의 누드는 여성을 시각화, 상품화가 아닌 순수한 예술적인 가치가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그럼 다음에도 재미있고 흥미로운 성 이야기로 건강과 성 박물관 에디터 S는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참고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21124.html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helmut_lang&logNo=150090489409

https://www.korea.kr/news/cultureColumnView.do?newsId=148791263

https://www.hankyung.com/life/article/2021120214361

https://www.nocutnews.co.kr/news/4786633

https://www.artinsight.co.kr/m/page/view.php?no=38218#link_guide_netfu_64709_77360

https://www.youtube.com/watch?v=4YHrxiUwCV8&t=1s

https://namu.wiki/w/%EC%98%AC%EB%9E%AD%ED%94%BC%EC%95%84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38218

도서 '만화로 보는 성의 역사' 챕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