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건강과 성 박물관 에디터 S입니다.

저희 건강과 성 박물관은 박물관 내부의 성 유물, 성 예술품과 같은 전시물을 감상하는 재미도 있지만 잘 조성된 정원의 조각을 감상하는 재미도 일품입니다. 박물관 정원은 계절별로 꽃이 피어나고, 성과 관련된 다양한 조각이 있는데, 남성의 거대한 성기를 조각한 모형과 남녀의 사랑을 조각한 모형, 아름다운 여성의 신체를 표현한 다양한 조각이 있는데요. 그중에서 오늘 포스팅에서 주목할 동상은 다비드 상입니다.

건강과 성 박물관 정원에서 박물관을 바라보고 있는 다비드 상은 떡 벌어진 어깨와 튼튼한 가슴 근육 그리고 초콜릿 복근까지 남성이라면 한 번쯤은 가지고 싶은 근육질의 몸입니다. 이 완벽한 조각상도 한 가지 흠이(?) 있는데, 심볼이 인체 비율에 비해 작은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비드 상의 심볼이 작다는 것을 증명이나 하는 듯, 다비드 상의 주변에서 사진을 찍는 손님들께서 "거시기는 조금 작지 않아? 내 거시기가 더 크겠다.","몸은 근육인데 고추는 아기 고추네"라는 말씀을 하시곤 합니다. 네, 작습니다. 다비드 상의 남성 심볼은 인체 비율로 보면 작은 편에 속합니다. 하지만 다비드 상의 심볼이 작은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완벽한 몸매에 멋진 외모까지 갖췄지만 심볼 만큼은 작았던 이유를 지금부터 살펴 보겠습니다.

남성에게 심볼 크기는 꽤나 큰 자존심입니다. 비뇨 의학과 의사와 같은 전문가들이 남성 심볼은 어느 정도 크기만 되면 성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이왕이면 큰 심볼을 갖고 싶어 하는 것이 대부분의 남성의 심정일 것입니다. 그런데 대물이라 불리는 큰 성기보다는 작은 크기의 남자 성기가 인기가 많았던, 아니 작은 성기가 대우 받고 큰 성기가 멸시(?) 받던 시절이 있습니다.

때는 그리스·로마 시대, 스포츠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근육질의 남성을 신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다부진 근육질의 남성을 추앙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 시절 처음으로 누드 조각상이 제작되기도 했는데 대부분이 근육질의 완벽한 남성을 모델이 누드 조각상의 주요 소재였습니다.

남성의 누드 조각상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시절, 근육질의 완벽한 몸은 추앙을 받았지만 남성의 큰 심볼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남성의 심볼이 크면 '음란하고 추하며 탐욕스럽다'라고 생각했고, 심볼이 작으면 '지적이고 절제적이면서 아름답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남성 동상의 작은 성기 만큼이나 음모도 적게 표현하고 있는데, 이 역시 비슷한 이유 때문에 작은 성기와 적은 음모를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반면에 괴물이나 야만인을 표현한 조각상의 경우는 대부분 성기가 크고 발기한 모습으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건강과 성 박물관에서도 이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건강과 성 박물관에 다비드 조각상을 살펴보면 몸에 비해서 작게 표현된 성기가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그리고 박물관 2층 그리스·로마 시대 전시물을 살펴보면 인간이 아닌 괴물이나 악마의 모습을 한 그림이나 청동상을 볼 수 있는데 그들은 다비드 조각에 비해서 제법 큰 성기를 표현한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작은 성기를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대우 받던 시절, 비열하고 야만적인 탐욕을 상징하는 큰 성기를 가진 사람들은 목욕탕에 가면 놀림을 당했고, 결혼 전에 예비 장인에게 큰 성기를 가진 것을 들킨다면 파혼도 당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만큼 작은 성기가 대우를 받았다고 할 수 있었지요.

한국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는데요. 위 사진은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의 조각상입니다. 나체를 표현한 조각상인데 성기 표현을 마치 면봉처럼 얇고 작게 표현해 놓았고 고환의 묘사도 보이지 않는데요. 왕의 위엄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작은 성기 표현은 잘 어울리지 않는 느낌인데요. 이 조각상이 만들어진 시기에는 불교가 부흥했던 시절로 색욕을 멀리하고 수양과 덕을 쌓아 부처의 깨달음을 얻는 사람은 양기가 머리로 올라가서 성기가 작아지는 경지(?)에 오른 것을 표현한 것인데요. 그리스의 그것과 매우 흡사한 느낌입니다.

그리스와 고려와는 반대로 신라 지증왕의 경우는 소위 대물로 유명합니다. 무려 45cm나 되는 성기를 가진 지증왕은 왕비를 찾지 못해서 신붓감을 찾아 전국을 다니면서 거구의 여성과 결혼 했다는 에피소드가 있는데요. 지증왕은 신라라는 국호를 만들고 마립간이라는 칭호에서 왕이라는 칭호를 처음으로 사용한 인물로 매우 특별하고 일반인이 범접할 수 있는 무엇을 만들기 위해 그의 물건마저도 일반인과는 확연하게 다르다고 표현하기 위해 꾸민 이야기 또는 남근을 숭배하는 토속 신앙으로 힘의 원천, 권력의 중심을 표현하기 위해서 큰 성기를 가지고 있었다고 과장해 표현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시대와 문화에 따라서 미의 기준이 다른 것과 같이 남자 성기 크기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씩 다른데요. 남자 성기에 대한 평가도(?) 시대와 문화에 따라서 조금씩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에피소드인데요. 성이라는 것도 문화에 따라서 서로 다른 것을 알 수 있게 된 계기인 것 같습니다.
그럼 에디터 S는 다른 이야기로 찾아 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건강과 성 박물관 에디터 S입니다.
저희 건강과 성 박물관은 박물관 내부의 성 유물, 성 예술품과 같은 전시물을 감상하는 재미도 있지만 잘 조성된 정원의 조각을 감상하는 재미도 일품입니다. 박물관 정원은 계절별로 꽃이 피어나고, 성과 관련된 다양한 조각이 있는데, 남성의 거대한 성기를 조각한 모형과 남녀의 사랑을 조각한 모형, 아름다운 여성의 신체를 표현한 다양한 조각이 있는데요. 그중에서 오늘 포스팅에서 주목할 동상은 다비드 상입니다.
건강과 성 박물관 정원에서 박물관을 바라보고 있는 다비드 상은 떡 벌어진 어깨와 튼튼한 가슴 근육 그리고 초콜릿 복근까지 남성이라면 한 번쯤은 가지고 싶은 근육질의 몸입니다. 이 완벽한 조각상도 한 가지 흠이(?) 있는데, 심볼이 인체 비율에 비해 작은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비드 상의 심볼이 작다는 것을 증명이나 하는 듯, 다비드 상의 주변에서 사진을 찍는 손님들께서 "거시기는 조금 작지 않아? 내 거시기가 더 크겠다.","몸은 근육인데 고추는 아기 고추네"라는 말씀을 하시곤 합니다. 네, 작습니다. 다비드 상의 남성 심볼은 인체 비율로 보면 작은 편에 속합니다. 하지만 다비드 상의 심볼이 작은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완벽한 몸매에 멋진 외모까지 갖췄지만 심볼 만큼은 작았던 이유를 지금부터 살펴 보겠습니다.
남성에게 심볼 크기는 꽤나 큰 자존심입니다. 비뇨 의학과 의사와 같은 전문가들이 남성 심볼은 어느 정도 크기만 되면 성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이왕이면 큰 심볼을 갖고 싶어 하는 것이 대부분의 남성의 심정일 것입니다. 그런데 대물이라 불리는 큰 성기보다는 작은 크기의 남자 성기가 인기가 많았던, 아니 작은 성기가 대우 받고 큰 성기가 멸시(?) 받던 시절이 있습니다.
때는 그리스·로마 시대, 스포츠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근육질의 남성을 신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다부진 근육질의 남성을 추앙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 시절 처음으로 누드 조각상이 제작되기도 했는데 대부분이 근육질의 완벽한 남성을 모델이 누드 조각상의 주요 소재였습니다.
남성의 누드 조각상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시절, 근육질의 완벽한 몸은 추앙을 받았지만 남성의 큰 심볼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남성의 심볼이 크면 '음란하고 추하며 탐욕스럽다'라고 생각했고, 심볼이 작으면 '지적이고 절제적이면서 아름답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남성 동상의 작은 성기 만큼이나 음모도 적게 표현하고 있는데, 이 역시 비슷한 이유 때문에 작은 성기와 적은 음모를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반면에 괴물이나 야만인을 표현한 조각상의 경우는 대부분 성기가 크고 발기한 모습으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건강과 성 박물관에서도 이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건강과 성 박물관에 다비드 조각상을 살펴보면 몸에 비해서 작게 표현된 성기가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그리고 박물관 2층 그리스·로마 시대 전시물을 살펴보면 인간이 아닌 괴물이나 악마의 모습을 한 그림이나 청동상을 볼 수 있는데 그들은 다비드 조각에 비해서 제법 큰 성기를 표현한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작은 성기를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대우 받던 시절, 비열하고 야만적인 탐욕을 상징하는 큰 성기를 가진 사람들은 목욕탕에 가면 놀림을 당했고, 결혼 전에 예비 장인에게 큰 성기를 가진 것을 들킨다면 파혼도 당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만큼 작은 성기가 대우를 받았다고 할 수 있었지요.
한국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는데요. 위 사진은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의 조각상입니다. 나체를 표현한 조각상인데 성기 표현을 마치 면봉처럼 얇고 작게 표현해 놓았고 고환의 묘사도 보이지 않는데요. 왕의 위엄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작은 성기 표현은 잘 어울리지 않는 느낌인데요. 이 조각상이 만들어진 시기에는 불교가 부흥했던 시절로 색욕을 멀리하고 수양과 덕을 쌓아 부처의 깨달음을 얻는 사람은 양기가 머리로 올라가서 성기가 작아지는 경지(?)에 오른 것을 표현한 것인데요. 그리스의 그것과 매우 흡사한 느낌입니다.
그리스와 고려와는 반대로 신라 지증왕의 경우는 소위 대물로 유명합니다. 무려 45cm나 되는 성기를 가진 지증왕은 왕비를 찾지 못해서 신붓감을 찾아 전국을 다니면서 거구의 여성과 결혼 했다는 에피소드가 있는데요. 지증왕은 신라라는 국호를 만들고 마립간이라는 칭호에서 왕이라는 칭호를 처음으로 사용한 인물로 매우 특별하고 일반인이 범접할 수 있는 무엇을 만들기 위해 그의 물건마저도 일반인과는 확연하게 다르다고 표현하기 위해 꾸민 이야기 또는 남근을 숭배하는 토속 신앙으로 힘의 원천, 권력의 중심을 표현하기 위해서 큰 성기를 가지고 있었다고 과장해 표현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시대와 문화에 따라서 미의 기준이 다른 것과 같이 남자 성기 크기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씩 다른데요. 남자 성기에 대한 평가도(?) 시대와 문화에 따라서 조금씩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에피소드인데요. 성이라는 것도 문화에 따라서 서로 다른 것을 알 수 있게 된 계기인 것 같습니다.
그럼 에디터 S는 다른 이야기로 찾아 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